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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다음은 HBF다 — SK하이닉스·샌디스크, AI 메모리의 새로운 계층을 열다 본문
HBM 다음은 HBF다 — SK하이닉스·샌디스크, AI 메모리의 새로운 계층을 열다
Russell(Yun) 2026. 8. 5. 08:47

요즘 AI가 널리 쓰일수록 데이터센터에서 진짜 골칫거리는 연산 성능이 아니라 '메모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8월 4일, SK하이닉스는 미국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메모리·스토리지 전시회 'FMS(Future of Memory and Storage) 2026' 개막에 맞춰 미국 반도체 기업 샌디스크(Sandisk)와 함께 차세대 메모리 기술 'HBF(High Bandwidth Flash, 고대역폭 낸드플래시)'의 첫 표준 규격을 공개했다. 올해 2월 두 회사가 컨소시엄을 꾸린 지 약 6개월 만에 내놓은 실질적인 첫 성과물로, 세계 최대 오픈 데이터센터 기술 협의체인 OCP(Open Compute Project)를 통해 업계 전체가 함께 쓰는 개방형 표준으로 공개됐다.
지금 AI 서버에서 가장 비싸고 귀한 메모리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다. HBM은 D램을 여러 층 쌓아 만들어 속도는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가격이 비싸고 한 칩에 담을 수 있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반대로 SSD는 낸드플래시를 써서 용량은 크고 저렴하지만 속도가 느려 AI 연산에 그대로 쓰기 어렵다. HBF는 이 둘 사이의 빈틈을 메우는 '중간 계층'이다. HBM처럼 여러 개의 칩을 쌓아 만들지만,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 대신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는 낸드를 쓰기 때문에, 훨씬 큰 용량을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그러면서도 SSD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로 제공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표준을 구체적으로 보면, 낸드를 8단 또는 16단으로 쌓은 두 가지 구성으로 만들어지며 최대 용량은 512GB에 달한다. 대역폭은 성능에 따라 세 등급(약 0.4TB/s~3.0TB/s)으로 나뉘어 필요에 맞춰 선택할 수 있게 설계됐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HBF와 GPU·CPU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특정 회사 전용 규격이 아니라 업계 표준 연결 규격인 UCIe(유니버설 칩렛 인터커넥트 익스프레스)를 채택해, 어느 제조사의 프로세서든 상관없이 유연하게 붙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SK하이닉스 김춘성 부사장은 개막일 기조연설에서 "AI 애플리케이션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전체 데이터 처리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며 "HBF를 통해 메모리와 스토리지의 경계를 확장하고, 시스템 전체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아키텍처 구축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이 기술에 힘을 쏟는 배경에는 '에이전틱 AI'의 부상이 있다.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AI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서,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폭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컨소시엄에는 구글과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Tenstorrent)도 참여하고 있어, SK하이닉스 혼자만의 구상이 아니라 업계 전반이 공감하는 방향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실제로 8월 6일에는 SK하이닉스, 샌디스크, 구글 딥마인드의 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HBF로 메모리 장벽을 넘다'라는 제목의 패널 토론도 예정돼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전시에서 개발 중인 10세대(V10) 375단 4D 낸드도 처음 공개했는데, 이전 세대보다 전력 대비 성능이 2.5배 높아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효율이 중요한 환경에 최적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낸드를 기반으로 한 고성능·고용량 기업용 SSD(eSSD)는 내년 초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샌디스크 쪽 로드맵에 따르면 HBF 초기 샘플은 올해 하반기에, AI 추론용 실제 제품은 2027년 초에 나올 예정이어서, 실제로 시장에 풀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그러나 'HBM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업계가 던진 첫 공식 답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표준 공개는 AI 메모리 경쟁의 다음 라운드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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